
여름 휴가로 영덕에 가서 대게를 실컷 먹겠다는 계획이라면, 지금은 접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대게는 자원 보호를 위해 매년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조업이 금지되고, 홍게라 불리는 붉은대게 수컷도 7월 10일부터 8월 25일까지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여름 강구항 대게거리의 간판은 그대로지만,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수입산이거나 냉동입니다. 대신 이 계절의 동해안에는 대게보다 훨씬 어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얼음이 서걱거리는 물회 한 그릇,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파란 길, 그리고 아침 여섯 시의 일출입니다. 포항과 영덕을 하나로 묶어 다녀오는 여름 바다 여행을 당일 코스와 1박 2일 코스로 나눠 정리했습니다.

포항과 영덕을 한 번에 묶는 이유
포항 북쪽 끝에서 영덕 강구항까지는 해안도로로 약 40분 거리입니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7번 국도와 918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한 줄기 해안선이라, 사실상 하나의 여행지처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포항이 도시의 편의와 볼거리를 담당한다면 영덕은 걷기 좋은 해안길과 조용한 어촌 풍경을 내어 주는 식입니다.
여름에 이 구간이 특히 좋은 이유는 동해안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아침 해가 바다에서 바로 떠오르기 때문에 새벽 일출을 보기 좋고, 반대로 한낮의 뙤약볕은 오후가 되면 산 쪽으로 넘어가 해변에 그늘이 생깁니다. 서해나 남해가 일몰 명소라면 동해안은 일출 명소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게다가 동해는 수심이 급하게 깊어져 물이 맑고 차가운 편이라, 한여름에도 물놀이가 시원합니다.
숙소를 어디에 잡을지 고민된다면, 처음이라면 포항 영일대 쪽이 무난합니다. 식당과 편의시설이 밀집해 있고 야경이 좋아 저녁 시간을 보내기 편합니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영덕 강구항이나 고래불 쪽 숙소가 어울립니다.
포항에서 놓치기 아까운 곳
포항 여행의 상징은 역시 호미곶입니다. 한반도 지도에서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해맞이광장 바다 한가운데 솟은 청동 조형물 ‘상생의 손’이 유명합니다. 바다 쪽 손과 육지 쪽 손이 짝을 이루고 있어, 아침 햇살이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장면을 찍으려는 사람이 새벽부터 모입니다. 광장 옆에는 국립등대박물관이 있어 아이와 함께라면 함께 둘러보기 좋습니다.
환호공원의 스페이스워크는 최근 몇 년 사이 포항의 대표 명소가 된 곳입니다. 롤러코스터 레일을 그대로 걸어 올라가는 형태의 조형물로, 꼭대기에 서면 영일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입장료가 없고 예약도 필요 없습니다. 3월부터 11월까지는 평일 10시부터 20시, 주말은 21시까지 운영하고 매월 첫째 주 월요일은 쉽니다. 다만 신장 110cm 이하는 올라갈 수 없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하면 출입이 통제되니 방문 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해가 진 뒤 조명이 켜지면 분위기가 또 달라져, 여름에는 저녁 일정으로 넣는 편이 덜 덥습니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어업 이주민들이 살던 가옥이 남아 있는 거리입니다. 좁은 골목과 목조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천천히 걸으며 사진 찍기 좋고, 골목 끝에서 항구로 이어지는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해수욕을 하고 싶다면 도심에서 가까운 영일대해수욕장, 조금 한적한 곳을 원하면 북쪽의 칠포·월포해수욕장이 선택지가 됩니다.

죽도시장, 여름엔 대게 말고 물회
포항 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입니다. 수산물 코너와 건어물 골목, 식당가가 뒤엉킨 규모가 상당해서 처음 가면 길을 잃기 쉬운데, 여름 여행자라면 목적지를 하나로 정하고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바로 물회입니다.
물회는 회에 채 썬 채소와 육수, 고추장 양념을 넣고 얼음을 띄워 먹는 음식으로, 원래 바쁜 어부들이 배 위에서 빠르게 끼니를 때우던 방식에서 나왔습니다. 포항식 물회는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이 진한 편이고, 밥이나 국수를 말아 먹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여름 더위에 입맛이 없을 때 얼음이 서걱거리는 물회 한 그릇이면 체감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가는 기분이 듭니다.
| 시기 | 동해안 별미 | 참고 |
|---|---|---|
| 여름(6~8월) | 물회·오징어·문어 | 대게·홍게는 금어기 |
| 가을(9~11월) | 대하·전어 | 대게 금어기 계속 |
| 겨울~봄(12~5월) | 대게·홍게 | 영덕 대게 제철 |
앞서 말한 대로 여름철 강구항 대게거리에서 파는 대게는 국내산 자연산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갔다가 “제철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싸지” 하며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대게를 고집하지 말고 오징어회나 문어숙회, 물회처럼 여름에 맛이 오르는 것들로 방향을 잡으면 만족도가 훨씬 높습니다. 대게가 목적이라면 겨울에 다시 오는 편이 맞습니다.

영덕 블루로드, 바다를 끼고 걷는 길
영덕의 대표 여행 콘텐츠는 해변보다 오히려 ‘길’입니다. 블루로드는 부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의 영덕 구간으로, A부터 D까지 네 개 코스로 나뉩니다.
A코스는 강구항에서 시작해 영덕 해맞이공원으로 이어지는 ‘빛과 바람의 길’입니다. 종점인 해맞이공원은 산불로 훼손된 야산을 공원으로 되살린 곳으로, 풍력발전기 바람개비와 하얀 등대, 그 아래 파란 바다가 겹치는 풍경이 영덕에서 가장 많이 사진에 담기는 장면입니다. 일출 명소로도 꼽힙니다.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B코스입니다. ‘푸른대게의 길’이라 불리며 경정항에서 대게 원조마을, 말미산 숲길, 블루로드다리, 죽도산전망대를 거쳐 축산항까지 총 15.5km, 5시간 정도 걸리는 중급 코스입니다. 한여름에 전 구간을 걷는 건 무리이니, 블루로드다리에서 죽도산전망대까지 짧게 끊어 걷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항구 풍경만으로도 충분합니다.
C코스는 ‘목은 사색의 길’로 영양남씨 발상지에서 대소산 봉수대, 괴시리 전통마을, 대진해수욕장을 지나 고래불해수욕장까지 17.5km입니다. 산길과 바닷길이 절반씩 섞여 있어 걷는 맛이 다양합니다. 물놀이가 목적이라면 백사장이 길게 뻗은 고래불해수욕장이나 한적한 대진해수욕장, 포항 방향으로는 장사해수욕장이 좋습니다.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즐기는 법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거나 아이가 어려서 오래 물에 있기 어렵다면, 동해안에는 바다를 ‘보면서’ 즐기는 선택지도 넉넉합니다.
강구항 인근 언덕에 자리한 삼사해상공원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은 공원입니다. 넓은 잔디밭과 산책로가 있어 차를 세우고 잠깐 쉬어 가기 좋고, 공원 안에는 커다란 종이 있는 경북대종각이 있어 아이들이 신기해합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다리가 뻐근할 즈음 들르면 딱 맞는 위치입니다.
영덕 해안 마을에서는 여름 성수기에 맞춰 어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얕은 갯바위에서 조개나 고둥을 줍고,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아 보는 식의 체험이라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도 어렵지 않게 참여합니다. 운영 여부와 일정은 마을마다 다르고 기상에 따라 취소되기도 하니, 방문 전 영덕군 관광 안내나 해당 마을에 확인하고 가는 편이 안전합니다.
해가 진 뒤라면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일대가 볼 만합니다. 바다 위로 놓인 영일대 누각과 건너편 제철소의 불빛이 함께 보이는 야경이 이 도시만의 풍경입니다. 낮 동안 달아오른 열기가 가시고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시간대라, 여름 여행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적당합니다.

당일과 1박 2일, 코스 짜기
이동 동선은 남쪽(포항)에서 북쪽(영덕)으로 올라가는 방향이 자연스럽습니다.
| 일정 | 코스 |
|---|---|
| 당일 | 호미곶 일출 →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 죽도시장 물회 점심 → 영일대해수욕장 → 스페이스워크 야경 |
| 1박 2일 첫날 | 죽도시장 → 영일대 → 스페이스워크 → 포항 숙박 |
| 1박 2일 둘째날 | 호미곶 일출 → 강구항 → 블루로드다리·죽도산전망대 → 해맞이공원 → 고래불해수욕장 |
당일치기라면 욕심을 줄이는 게 핵심입니다. 포항 시내권(죽도시장·영일대·스페이스워크)만 묶거나, 해안 드라이브(호미곶·구룡포) 중 하나로 방향을 정하면 여유가 생깁니다. 1박 2일이면 첫날 포항, 둘째 날 영덕으로 나누는 구성이 가장 무리가 없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KTX로 포항역까지 간 뒤 시내버스나 렌터카를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호미곶이나 영덕 블루로드 구간은 버스 배차 간격이 넓어, 일정이 빠듯하다면 자동차가 편합니다. 영덕까지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강구·영덕행 버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여름 동해안 여행, 챙기면 좋은 것들
- 일출 시간 확인: 7~8월 동해안 일출은 대체로 새벽 5시 20분 전후입니다. 호미곶 일출을 볼 계획이라면 30분 전에는 도착해 자리를 잡는 게 좋습니다.
- 모자와 자외선 차단제: 해맞이광장이나 블루로드 해안 구간은 그늘이 거의 없습니다. 한여름 정오 전후 노출은 피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 걷기 편한 신발: 블루로드는 산길 구간이 섞여 있어 샌들보다 운동화가 적합합니다.
- 물놀이 시간대 조절: 오전 10시 이전, 오후 4시 이후가 덜 붐비고 덜 덥습니다. 동해는 수심이 급해지는 구간이 있으니 안전선 안에서만 물놀이해야 합니다.
- 주말 식당 대기: 죽도시장 물회 골목과 강구항 식당은 성수기 주말 점심에 대기가 깁니다. 11시 30분 이전에 자리를 잡으면 기다림을 피할 수 있습니다.
- 숙소 조기 예약: 7월 말에서 8월 초는 동해안 숙소가 가장 붐비는 시기입니다. 해변 인근 숙소는 미리 잡아 두는 게 좋습니다.

자주 궁금한 것들
여름에 영덕 가면 대게를 아예 못 먹나요?
식당에서 파는 것 자체는 있습니다. 다만 6월부터 11월까지는 국내 조업이 금지된 기간이라 수입산이나 냉동 물량입니다. 제철 자연산 영덕 대게를 원한다면 12월부터 이듬해 5월 사이가 맞습니다.
포항과 영덕을 하루에 다 볼 수 있나요?
가능은 하지만 이동에 시간을 대부분 쓰게 됩니다. 호미곶에서 영덕 해맞이공원까지만 해도 1시간 넘게 걸립니다. 하루라면 한쪽을 고르고, 둘 다 보고 싶다면 1박을 권합니다.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곳은 어디인가요?
국립등대박물관과 스페이스워크, 백사장이 완만한 고래불해수욕장이 무난합니다. 다만 스페이스워크는 신장 110cm 이하는 이용할 수 없어 어린아이와는 아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습니다.
블루로드는 초보자도 걸을 수 있나요?
전 구간은 부담스럽지만 구간을 끊으면 충분합니다. 블루로드다리에서 죽도산전망대까지, 또는 해맞이공원 주변 산책로 정도가 여름철에 적당합니다.
물회는 회를 못 먹는 사람도 괜찮을까요?
식당에 따라 회 대신 오징어나 문어만 넣어 주는 곳도 있고, 물회 대신 오징어불고기나 대게라면 같은 메뉴를 갖춘 곳도 많습니다. 주문할 때 미리 물어보면 조정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매운 양념이 부담스럽다면 육수 양을 넉넉히 달라고 요청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차 없이 뚜벅이로도 다닐 수 있나요?
포항 시내권은 가능합니다. 포항역이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죽도시장·영일대·환호공원까지는 시내버스로 이어집니다. 다만 호미곶과 영덕 블루로드 구간은 배차 간격이 넓어 시간을 많이 씁니다. 뚜벅이 여행이라면 포항 시내와 구룡포 정도로 범위를 좁히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마무리
포항과 영덕의 여름은 대게의 계절이 아닙니다. 그 대신 얼음 띄운 물회와 바다를 끼고 걷는 파란 길, 그리고 손가락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있습니다. 계절에 없는 것을 찾다가 실망하기보다, 이 계절에만 제 맛이 나는 것들로 일정을 채우면 훨씬 만족스러운 여행이 됩니다. 이번 여름 동해안을 계획 중이라면 호미곶에서 시작해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마무리하는 한 줄기 코스를 떠올려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