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동팔경 여덟 곳 중에서 바다가 아니라 강을 굽어보는 누각은 딱 하나입니다. 삼척 죽서루. 오십천 절벽 위에 서서 물길을 내려다보는 이 누각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뒤 60년을 보물로 있다가, 2023년 12월 28일 밀양 영남루와 함께 국보로 승격됐습니다. 삼척 가을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한 곳만으로도 출발할 이유가 됩니다. 게다가 삼척은 여름 성수기 인파가 빠진 9월 중순부터 10월까지가 바다 색이 가장 진해지는 시기입니다.
동해안 여행지를 떠올릴 때 강릉과 속초에 밀려 순서가 뒤로 가는 곳이 삼척입니다. 그런데 국보 누각, 바다 위를 건너는 케이블카, 투명한 물빛으로 유명한 항구,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석회동굴이 자동차로 30분 안쪽에 모여 있는 도시는 흔치 않습니다. 여기서는 삼척 북쪽 시내권에서 남쪽 근덕·원덕 해안으로 내려가는 순서대로 코스를 짜고, 요금과 운영 시간, 예약이 필요한 곳까지 정리해 두겠습니다.
삼척 가을 여행이 9월 말부터 좋아지는 이유
동해안 바다는 여름에 가장 예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늦여름 이후에 물빛이 더 선명해집니다. 파도가 여름 태풍철을 지나면서 부유물이 가라앉고, 햇빛 각도가 낮아지면서 수면 반사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장호항의 물속 바닥이 배 밑으로 그대로 보이는 사진들이 대개 늦봄과 초가을에 찍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숙박비와 대기 시간도 확 내려갑니다. 삼척해상케이블카는 사전 예약이 안 되고 현장 매표만 받기 때문에 성수기에는 대기가 길어지는데, 9월 평일이면 도착해서 바로 타는 날이 많습니다. 대금굴처럼 하루 관람 인원이 정해진 곳도 여름보다 예약 잡기가 수월합니다.
한 가지 준비물은 겉옷입니다. 해안 도로와 케이블카 승강장은 바람이 그대로 들어옵니다. 낮에 반팔이 편한 날씨여도 해가 기울면 체감이 뚝 떨어지니, 얇은 바람막이 하나는 차에 두고 다니는 편이 좋습니다.

죽서루 — 국보로 올라선 관동팔경의 누각
죽서루가 다른 정자와 다른 점은 기둥에 있습니다. 절벽의 자연 암반을 깎지 않고 그 위에 그대로 세우다 보니, 기둥 열일곱 개의 길이가 전부 다릅니다. 바위가 높은 자리에는 짧은 기둥, 낮은 자리에는 긴 기둥을 세워 마루 높이를 맞춘 것입니다. 관동팔경의 정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기도 합니다.
문학 쪽 이력도 두껍습니다. 정철의 『관동별곡』에 등장하고, 겸재 정선이 『관동명승첩』에 그렸으며, 김홍도와 강세황도 이곳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누각 안팎에 남은 시문만 200여 수입니다. 마루에 올라 오십천 쪽을 보면 왜 이 자리에 세웠는지가 설명 없이 이해됩니다.
관람료는 없습니다.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5시까지 열고, 입장은 마감 30분 전까지입니다. 시내 한복판이라 주차하고 20~30분이면 충분히 둘러봅니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갈 수 있으니 편한 양말을 신고 가면 좋습니다.

삼척해상케이블카 — 바다 위 874m를 건너는 구간
용화역과 장호역을 잇는 삼척해상케이블카는 길이 874m입니다. 중간 철탑이 없는 구간을 바다 위로 건너가기 때문에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습니다. 발밑으로 장호항의 물빛이 그대로 들어옵니다.
| 구분 | 내용 |
|---|---|
| 요금 | 편도 6,000원 / 왕복 10,000원 |
| 운영 시간 | 09:00~18:00(매표 마감 17:10) |
| 예약 | 불가, 현장 매표만 |
| 문의 | 1668-4268 |
예약이 안 된다는 점이 이 코스의 변수입니다. 매표가 조기 마감되는 날도 있어서, 남쪽 해안 코스를 도는 날이라면 케이블카를 오전 일정 앞쪽에 넣는 편이 안전합니다. 왕복을 끊어 다시 돌아오는 방법도 있지만, 편도로 건너가 장호항 쪽을 걸어 둘러본 뒤 다시 타고 오는 식으로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장호항 — 물빛이 바닥까지 보이는 항구
장호항에는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반달처럼 안쪽으로 파고든 지형이라 파도가 잔잔하고, 그 덕분에 물이 흐려지지 않습니다. 투명카누와 스노클링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방파제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 충분히 볼 만합니다.
체험 프로그램은 대체로 여름 시즌 중심이라 가을에는 운영 여부가 날짜마다 다릅니다. 카누를 꼭 타고 싶다면 방문일 기준으로 현지 업체에 미리 확인하고 움직이는 편이 낫습니다. 가을 장호항의 진짜 매력은 오히려 조용함 쪽입니다. 성수기의 붐비는 해변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초곡 용굴촛대바위길 — 무료로 걷는 해안 절경
근덕면 초곡항에 조성된 탐방로입니다. 512m 데크길과 56m 출렁다리를 포함해 총연장 660m이고, 오랫동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던 해안이 개방된 구간입니다. 파도가 바위를 파고들어 만든 용굴과 바다에 솟은 촛대바위를 코앞에서 봅니다.
이용료는 무료입니다.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고 입장은 오후 5시에 마감하며, 동절기에는 한 시간씩 줄여 운영합니다. 매주 월요일은 쉽니다. 월요일 휴무를 모르고 갔다가 돌아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요일부터 확인하고 넣으세요. 걷는 시간은 왕복 40분 안팎입니다.
대금굴과 환선굴 — 예약제와 상시 입장의 차이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의 두 동굴은 성격이 다릅니다. 대금굴은 인터넷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고, 환선굴은 예약 없이 갈 수 있습니다.
| 구분 | 대금굴 | 환선굴 |
|---|---|---|
| 예약 | 인터넷 사전 예매 필수 | 예약 없이 상시 입장 |
| 어른 요금 | 12,000원(모노레일 포함) | 4,500원 |
| 접근 | 610m 모노레일 40인승, 30분 간격 | 도보 이동 |
| 관람 시간 | 왕복 40분 + 내부 1시간 | 도보 구간 포함 넉넉히 |
| 운영 | 3~10월 09:00~17:00 | 계절별 상이 |
| 휴관 | 매월 18일 | 계절별 상이 |
대금굴은 예매 시각 30분 전까지 도착해야 하고 늦으면 그 회차를 놓칩니다. 동굴 안은 계절과 관계없이 서늘하니 겉옷을 챙기고, 바닥이 젖어 있어 미끄러운 신발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환선굴은 매표소에서 동굴 입구까지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야 해서 체력 소모가 있는 편입니다. 아이나 어르신과 함께라면 모노레일이 있는 대금굴 쪽이 편합니다.

해양레일바이크 — 해안선 5.4km를 페달로
궁촌정거장과 용화정거장을 잇는 삼척해양레일바이크는 동해 해안선을 따라 5.4km를 달립니다. 4월부터 9월까지 성수기 요금은 2인승 20,000원, 4인승 30,000원이고 야간 운행은 10% 할증이 붙습니다.
주의할 점은 예약 방식입니다. 인터넷 예약만 받고 전화 예약은 받지 않습니다. 회차별 정원이 있어서 주말은 미리 잡아야 하고, 편도 운행이라 출발한 정거장으로 돌아오려면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차를 어느 정거장에 세울지 먼저 정하고 표를 끊으세요.
1박 2일 코스로 묶으면 이렇게
동선은 북쪽 시내에서 남쪽 해안으로 내려오는 순서가 가장 덜 겹칩니다.
| 시간 | 첫째 날 | 둘째 날 |
|---|---|---|
| 오전 | 죽서루, 시내 이동 | 해양레일바이크(사전 예약) |
| 점심 | 삼척 시내 또는 맹방 | 초곡항 인근 |
| 오후 | 삼척해상케이블카, 장호항 | 초곡 용굴촛대바위길 |
| 늦은 오후 | 이사부사자공원 | 맹방해변 산책 후 귀가 |
| 숙박 | 장호·용화 인근 | — |
이사부사자공원은 입장료가 없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하며 월요일에 그림책나라가 쉽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위치라 해 지기 전에 들르면 전망이 좋습니다. 맹방해변은 백사장이 길게 이어져 산책하기 좋고, 삼척 시내에서 차로 15분 정도입니다.
동굴을 넣고 싶다면 둘째 날 오전을 대금굴로 바꾸고 레일바이크를 빼는 편이 낫습니다. 대이리 동굴지대는 해안에서 내륙으로 한참 들어가야 해서, 해안 코스와 같은 날에 묶으면 이동만 하다 하루가 갑니다.

새천년해안도로와 삼척해변 — 차로 지나기만 해도 되는 구간
삼척 시내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새천년해안도로는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되는 길입니다. 도로 바로 옆이 바다이고, 중간중간 차를 세울 수 있는 전망 공간과 조각 작품이 놓인 구간이 이어집니다. 케이블카나 동굴처럼 시간을 정해 움직여야 하는 일정 사이에, 계획 없이 끼워 넣기 좋은 코스입니다.
삼척해변은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라 접근성이 좋습니다. 여름에는 사람이 몰리지만 가을에는 백사장이 거의 비어 있어서, 해가 지는 시간에 걸으면 바다 소리만 남습니다. 맹방해변은 백사장이 훨씬 길게 이어지고 뒤로 소나무 숲길이 붙어 있어 산책 위주로 다니기에 낫습니다. 두 해변 중 어디를 넣을지는 숙소 위치로 정하면 됩니다. 시내권에 묵으면 삼척해변, 남쪽 근덕 방향에 묵으면 맹방해변이 동선에 맞습니다.

삼척에서 먹는 것 — 곰치국과 물회
이 지역 식탁에서 가장 삼척다운 메뉴는 곰치국입니다. 물곰탕이라고도 부르는데, 흐물흐물한 곰치를 묵은지와 함께 맑게 끓여 냅니다. 국물이 시원해서 아침 해장으로 찾는 사람이 많고, 겨울이 제철로 알려져 있지만 항구 주변 식당에서는 가을에도 대체로 냅니다. 처음 먹으면 생선 살의 식감이 낯설 수 있으니, 일행 중 한 그릇만 시켜 나눠 먹어 보고 판단해도 됩니다.
물회는 여름 음식처럼 보여도 동해안에서는 계절을 크게 가리지 않습니다. 장호항과 초곡항, 정라진 일대 식당에서 그날 들어온 생선으로 냅니다. 국물 없이 비벼 먹는 회국수 형태를 내는 곳도 있습니다. 여기에 강원 내륙 쪽 메뉴인 장칼국수까지 넣으면, 바다와 산 양쪽 메뉴를 하루에 다 맛보는 셈이 됩니다.
주말 점심시간에는 해안가 유명 식당의 대기가 깁니다. 케이블카 탑승 직후처럼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간대를 피해서, 11시 반쯤 이른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으로 넘어가는 편이 시간 손실이 적습니다.
2인 기준 비용은 얼마나 들까
입장료와 체험 요금만 따로 모아 보면 규모가 잡힙니다. 성인 2인 기준입니다.
| 항목 | 2인 요금 | 비고 |
|---|---|---|
| 죽서루 | 0원 | 무료 |
| 초곡 용굴촛대바위길 | 0원 | 무료, 월요일 휴무 |
| 이사부사자공원 | 0원 | 무료 |
| 삼척해상케이블카 왕복 | 20,000원 | 현장 매표 |
| 해양레일바이크 2인승 | 20,000원 | 인터넷 예약만 |
| 대금굴 | 24,000원 | 모노레일 포함 |
| 환선굴 | 9,000원 | 예약 불필요 |
무료 구간이 셋이나 되기 때문에, 유료 시설을 전부 넣지 않아도 하루가 충분히 채워집니다. 예산을 줄이려면 동굴 둘 중 하나만 고르고 레일바이크를 빼면 됩니다. 반대로 아이와 함께라면 모노레일이 있는 대금굴과 레일바이크 쪽 만족도가 높습니다.
가는 법과 챙길 것
수도권에서는 청량리에서 KTX-이음을 타고 동해역까지 간 뒤 삼척 시내로 이동하는 방법이 가장 빠릅니다. 동해역에서 삼척 방향 시내버스와 좌석버스가 연결되고, 삼척종합버스정류장에서 남쪽 해안 마을로 가는 노선이 이어집니다. 다만 케이블카·초곡·대이리를 하루에 도는 일정이라면 버스 배차 간격 때문에 시간이 많이 눌립니다. 렌터카나 자차를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요금·시간 정보는 계절과 기상 상황에 따라 바뀝니다. 케이블카는 바람이 강한 날 운행을 멈추고, 초곡 용굴촛대바위길도 파도가 높으면 구간을 통제합니다. 출발 전날 삼척시 문화관광 누리집에서 운영 여부를 한 번 확인하고 나서면 헛걸음할 일이 없습니다.
삼척 가을 여행의 장점은 하루에 성격이 다른 풍경 세 가지를 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오십천 절벽 위 국보 누각, 바다 위를 건너는 케이블카, 그리고 파도가 깎아낸 해안 절벽. 강릉과 속초를 이미 다녀왔다면 다음 동해안 목적지로 삼척을 넣어 보세요.
